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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주간 월요일 미사 강론(주임신부)

우면성당(사)
2021-01-11
조회수 27


                                        연중 제1주간 월요일

                                                             (2021. 1. 11)


    오늘 독서인 히브리서의 독자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유다인들입니다. 20~30년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으며 신앙생활을 

해 오던 그들은 다른 유다인들의 핍박과 속임수로 다시 유다교로 돌아가야 하는가 라는 선택 상황에 직면해서 믿음이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이에 그 유혹을 물리치고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지키라고 이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래서 이 편지의 주요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구원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는 로마서와 쌍벽을 이룰 정도로 교리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 이러한 성격은 오늘 독서의 1~3절에서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우선 1절은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밝힙니다. 여기서 “예언자”란 그리스어는 직역하면 ‘미리 앞서 말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부글부글 끓게 하다’,

‘넘쳐 흐르다’란 뜻의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하는데, 구약의 예언자들은 하느님께서 주신 말씀을 말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기 때문(예레 20, 9)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 “예언자들”이라고 복수형으로 쓴 것은, 이사야, 예레미야, 예제키엘, 

호세아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이나 모세, 여호수아 등도 포함(창세 20, 7 ; 시편 46, 2)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직접 말씀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예언자인 대리자들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단순히 기계적 통로로만 이용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느님의 뜻과 목적을 알아서 뜨거운 마음으로 전달하도록 그들을 

세밀하게 지도하시고, 그들의 영혼을 감동시켜서 이용하셨습니다.

    또 “여러 번에 걸쳐”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가 여러 시기, 여러 단계를 거쳐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음을 나타냅니다. 

실상 구약 시대의 계시들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마다 조금씩 부분적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방식으로”는 ‘다방면으로’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꿈, 환시, 음성, 내적인 감동, 천사들, 역사적 사실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하여 예언자들에게 계시하셨고, 그들이 유다인들에게 당신의 뜻을 알리도록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하느님의 무한한 지식이 제한된 용량의 지식밖에 없는 인간에게 

일시에 주어진다면, 그 계시의 방대함과 깊이에 압도되어 어떤 이해도 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마지막 때에는”을 직역하면, ‘이러한 

날들의 마지막에’인데, 이것은 율법 시대가 끝나고 메시아 시대가 시작됨을 알리는 표현입니다. 그런 탓인지 오늘 우리가 들은 

복음에서 예수님의 첫 번째 선포 말씀은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였습니다. “때가 찼다”는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기 시작하신 일이 아무 때나 우연히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전의 모든 시간이 지금의 이 “때”를 준비하기 

위한 것이었고, 지금이 바로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기로 계획하시고 준비해 온 “때”라는 말씀입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시면서 “나를 따라오너라.”라고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는데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무언가를 준비하거나 채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것을 버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아버지도, 삯꾼도, 그물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나섰던 것입니다. 사실, 잘못된 것, 좋지 않은 것은 당연히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좋은 것마저도 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더 좋은 것, 더 값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버림”은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하나의 조건이요 방법일 뿐, 결코 목적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것은 무엇을 버렸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찾는지, 누구를 찾는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버리기 위해 

따르는 것이 아니라, 따르기 위해 버려야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버렸는가? 

버렸다고 하면서 결국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쥐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로 인해 계속해서 신자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자신을 잘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