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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보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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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강론을 게시판으로 정리했습니다. 

7월 31일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사제 기념일 토요일 10시 미사(보좌신부)

우면성당(사)
2021-07-31
조회수 53

  찬미 예수님,

  오늘은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사제 기념일입니다. 이냐시오 성인은 어렸을 적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무절제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스스로 고백했다고 합니다. 성인은 명예를 얻으려는 열망에 사로잡혀 

허영과 사치를 일삼았고, 전쟁에서 큰 업적을 일으키기 위해 군대에 입대하였습니다. 그러나 프랑스군과의 

교전 중에 다리 부상을 입고 집으로 돌아온 성인은 처음 예수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삶에 관한 책을 접하게 

되었고, 방탕했던 지난 날 자신을 채워주지 못한 갈망을 성인들의 모범을 따르는 삶을 통해 해소시킬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런 내적 체험을 할 즈음 성인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계신 성모 마리아의 

환시를 체험하였고, 이내 자신의 과거를 뉘우치고 회심의 길로 들어섰다고 합니다. 이후 성인은 기도와 

보속을 생활하였고, 나아가 예수회를 설립하였습니다. 또한 오늘날, 한국 교회의 신학생들 또한 

이냐시오 성인의 저서 “영신수련”을 통해 30일간 하느님과의 깊은 만남을 체험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의 모습을 보면 그의 모습이 참 어리석게 보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의 힘을 전해들은 

그는 예수님을 세례자 요한이 살아서 돌아온 것으로 확신하며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오늘 복음이 말해주듯,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는 것이 두려워, 즉 자신의 체면이 깎이는 것이 

두려워서, 평소 경외심을 갖고 예언자로 생각하고 있었던 세례자 요한을 무참히 살해해버린 죄책감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요한의 죽음을 바라보면, 우리 눈에는 너무 허무하기 짝이 없습니다. 한 소녀의 부탁으로 

하느님의 사람이 한 순간 형장의 이슬로 변하는 모습, 단 한 번의 변론의 기회 없이, 그저 묵묵히 

죽어야만 했던 요한의 모습이 예수님께서 전에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없다”라고 말씀하신 

모습에 비해 너무 허무하게만 보입니다. 그러나 바꾸어 생각해보면, 결국 하느님의 사람으로 

한 평생 살아가면서, 자신보다는 하느님으로 가득 찬 채 죽어간 요한의 모습은 그 어떤 죽음보다도 

고귀하고 아름다워 보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오늘 복음 말씀에서 자신이 커져, 하느님의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결국 죄책감에 예수님을 

자신이 죽인 요한으로 생각하는 헤로데와 세상의 눈으로는 허무하게 죽었지만, 실상 하느님으로 가득 

찬 죽음을 맞이한 세례자 요한, 이 둘의 대조적인 모습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점을 분명히 나타내줍니다.

 

  물론 우리가 타인을 만나게 되면, 가끔 상대방보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의 체면을 차리고 싶어 합니다. 이것이 그리 좋게만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의 본능이 

그렇게 하도록 합니다.

  그러나 오늘 하루는, 내가 타인에게 잘 보이고, 타인보다 우월하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하느님이 보시기에 참 좋은” 모습을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과 깊은 일치 속에, 우리 내면을 하느님으로 채워나갈 수 있도록 미사 중에 기도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