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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6주일 11시 교중미사 강론(주임신부)

우면동성당
2021-02-14
조회수 764

                   연중 제6주일 강론

                                                                                                    (2021. 2. 14)

  예전에는 오늘 제1 독서를 흔히 나병과 관련해서 이해하였는데, 실상은 나병만이 아니라 종기나 습진, 

건선처럼 피부가 손상되는 모든 피부병에 대한 규정입니다. 하지만 피부병을 치료하기 쉽지 않다 대상이었습니다. 

더구나 병이 진행되면서 외형상 흉한 모습이 되고, 병으로 인해 고약한 냄새까지 나서 ‘하느님의 벌’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제1 독서에서 언급된 것처럼 사람이 다니는 곳을 다닐라치면 종 같은 것을 흔들면서 

“부정한 사람이오! 부정한 사람이오!”라고 외쳐서 일반인이 자신에게 오지 못하도록 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옷은 찢어 입고 머리는 풀고, 마을 밖에서 철저하게 혼자 살아야 했습니다. 

그런 탓에 종교 예식만이 아니라 사회·정치 그 어떤 것에도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 출신 역사가인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37?-100?)는 “나병에 걸린 이는 죽은 이와 

모든 면에서 다르지 않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런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며 ‘무릎을 꿇었다’라고 하는데, 이는 최고의 존경심을 표현하는 행동입니다. 

그리고는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하고자 하다’와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표현은 그리스어 원문에서 모두 현재형입니다. 

이는 그 나병환자가 예수님께는 병 고치는 능력이 있고, 일반 의사와는 달리 지금 당장 낫게 하는 하느님의 능력을 지닌 분, 

즉 구세주로 믿었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여기서 “깨끗하게”라는 말은 육체의 불결함이 깨끗해질 

때(마태 23,25.26)만이 아니라, 도덕적·종교적 정결에 대해서도 사용(사도 15, 9 ; 2코린 7, 1)되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찾아온 그 나병환자는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살아왔던 외로움도 이제는 견디지 못하겠고, 

자신이 부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숨어 사는 것도 더는 못하겠으니 

그런 삶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간절하게 호소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고 하는데, 이 말의 그리스어 원어는 본래 인간의 ‘내장’을 가리켰습니다. 

하지만, 점차 ‘사랑’이나 ‘애타는 마음’이란 뜻을 갖게 되었고, ‘찢어질 듯한 마음’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은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셨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율법은 나병환자를 만지는 사람 역시 불결하다고 하였는데, 예수님은 왜, 말씀만 하셔도 되는 일에 

굳이 손을 대셨을까? 예수님의 이 행동은 아마도 나병 환자에게는 치료가 되었다는 확신을 심어주려는 의도였을 수 있습니다. 

또 어쩌면 외적인 불결함보다는 마음의 정결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행동이었을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가 지닌 육신의 상처 때문에 그를 멸시하고 혐오하거나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일러주시려는 것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그 사람을 고치신 다음에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요즘 말로 하면 방역 당국의 확인을 받고 

격리조치에서 해제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복음에는 그가 사제에게 가서 몸을 보이고 예물을 바쳤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 나병환자는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고, 

오히려 “떠나가서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만” 하였습니다. 처음에 “하고자 하시면”이라고 하며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였던 것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놀라워하고 신기해하며 자랑만 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던 것을 얻자, 그걸 주신 분에 대한 믿음과 감사를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로 인해 예수님만 고을로 들어가지도, 드러나게 다니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나병환자를 격리에서 임의로 해제하여 그 시대의 관행을 무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나병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갖고 현대에도 있는 더 무서운 병이 있습니다.

이 병은 자기 죄는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으면서 시기, 질투, 미움과 무관심, 교만, 욕심, 분노, 

이기심에 휩싸여 있는 것입니다. 그로 인해 속은 썩었어도 겉은 멀쩡하기 때문에 병자라는 것을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 중에도 혹시 그런 병에 걸린 분이 있습니까?


 이제 사흘 후면 재의 수요일로 사순 시기가 시작되는데, 그 병을 어떻게 고치려고 하십니까? 

감추고 감추어도 결코 감추어지지 않는 우리의 고질병들을 예수님께 보이고, 

그분의 손길이 우리를 어루만져 주시도록, “가엾은 마음”으로 치유의 손길을 내미셨던 

예수님 곁에 계속 머물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리고 제2 독서의 말씀처럼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면서 

그들에게 유익한 것을 찾으며 내가 아닌 너를 위한 사랑을 실천하려고 애썼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