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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7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이종오 (말딩)
2018-09-28 12:04
조회수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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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27일 성 빈첸시오 드 폴 사제 기념일

             제1독서 코헬렛 1,2-11
              2 허무로다, 허무! 코헬렛이 말한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3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4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5 태양은 뜨고 지지만 떠올랐던 그곳으로 서둘러 간다. 6 남쪽으로 불다 북쪽으로 도는 바람은 돌고 돌며 가지만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7 강물이 모두 바다로 흘러드는데 바다는 가득 차지 않는다. 강물은 흘러드는 그곳으로 계속 흘러든다.
8 온갖 말로 애써 말하지만 아무도 다 말하지 못한다. 눈은 보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못한다.
9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10 “이걸 보아라, 새로운 것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이 있더라도 그것은 우리 이전 옛 시대에 이미 있던 것이다.
11 아무도 옛날 일을 기억하지 않듯 장차 일어날 일도 마찬가지. 그 일도 기억하지 않으리니 그 후에 일어나는 일도 매한가지다.

             복음 루카 9,7-9
             그때에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7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더러는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 하고, 8 더러는 “엘리야가 나타났다.” 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언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났다.” 하였기 때문이다.
9 그래서 헤로데는 이렇게 말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전에 고등학교 친구의 아버님 장례식장에 갔다가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평소에 연락을 하면서 자주 만나던 친구도 있었지만, 몇몇은 고등학교 졸업하고서 처음 만난 친구였기에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30년 만에 만난 친구 중 한 명이 저를 너무나 어려워하는 것입니다. 알고 보니 천주교 신자였습니다.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면서 멀리서만 신부님을 봤지 이렇게 가까이서 신부님을 보는 것이 처음이라면서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네가 신부님이 될 지는 정말로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니 “학창시절에 너는 노는 것 정말로 좋아했잖아.”라고 말합니다.

노는 것을 좋아하면 신부님이 될 수가 없는 것일까요?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서 미사를 봉헌하기에, 노는 것을 좋아하는 저 같은 사람이 신부님일 리가 없다고 생각했나 봅니다. 그러나 저 같은 사람도 신부로 20년째 살고 있습니다.

고정관념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학창시절에 공부 잘 하는 친구들은 커서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사고 많이 치고 공부도 잘 하지 못했던 친구가 사회 안에서 더 잘 살아가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따라서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이 이 세상 삶을 살아가면서 필요합니다. 그래야 좀 더 넓게 이 세상을 바라볼 수 있으며, 그 안에서 활동하시는 다양한 주님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헤로데가 두려워하고 당황스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큰 잘못 때문이지요. 그는 헤로디아의 춤 값으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내주는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는 소문이 들리는 것입니다.

헤로데는 커다란 고정관념을 하나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로 자기 자신만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체면이 깎일까봐 세례자 요한을 죽이는 죄까지 지었습니다. 헤로디아의 춤추는 것을 보고서 사람들 앞에서 말합니다. 어떤 소원을 들어도 다 들어주겠다고……. 그러자 헤로디아는 요한의 머리를 요구했고, 자신의 체면 때문에 그 소원을 들어주었던 것이지요. 자기 자신의 체면이 중요하다는 고정관념이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에 두려움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의 결과는 더 끔찍합니다. 역사 안에서 춤 값으로 세례자 요한을 죽였던 못된 지도자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만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올바른 판단은 주님의 뜻에 맞춰 살아가게 만들며, 두려움에서 벗어나 하늘 나라에서의 행복을 희망하게 만들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아인슈타인).


한티 성지                                           
                                          
                   60 한티 성지        
 한티 순교성지는 순교자들이 살고, 죽고, 묻힌 곳입니다. 을해박해(1815)와 정해박해(1827)를 전후하여 박해를 피한 교우들이 팔공산 중턱으로 숨어들어 1850년 말경에 한티는 큰 교우촌을 이루게 됩니다.

병인박해(1866)가 진행 중이던 1868년 봄, 한티에 들이닥친 포졸들은 배교하지 않는 많은 교우들을 그 자리에서 처형하고 마을을 불태웠습니다. 박해 소식을 듣고 인근에 살던 교우들이 한티에 들어왔을 때에는 이미 마을은 불타 없어지고 버려진 순교자들의 시신이 산야 곳곳에서 썩어가고 있었다고 합니다. 시신의 훼손이 너무 심하여 옮길 수가 없었기에 순교한 그 자리에 시신을 안장하였습니다.

지금까지 확인된 한티 순교자들의 묘는 모두 37기로 박해 당시의 교우촌과 그 주위에 넓게 흩어져 있습니다. 그중에는 당시 공소 회장이던 조대비의 친척 조 가롤로와 부인 최 바르바라, 동생 조아기 그리고 서태순 베드로의 신원만 밝혀졌고, 그 외에는 신원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한티는 큰 고개, 큰 재라는 의미입니다. 이곳은 경상도 지방에서 가장 오래된 공소 중의 하나이며, 대구대교구의 초석이 된 공소입니다. 대구 초대 주임신부인 김보록 로베르 신부는 1882년에 한티 공소에서 19명이 고해성사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거룩한 순교지를 지키려고 공소 신자들이 노력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성지에는 박해 후 재건된 공소터가 보존되어 있으며, 개인 또는 단체로 숙식이 가능한 피정의 집이 있어 순례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미사는 토요일만 오후 4시이고, 매일 오전 11시에 봉헌됩니다. 주소는 경북 칠곡군 동명면 한티로1길 69이고, 전화는 054-975-5151입니다.                  




대구 대교구 한티 성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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